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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이 다가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양념이 아니라 배추입니다.
어릴 적 김장을 할 때를 떠올려보면 어머니는 배추만큼이나 소금도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김장을 앞두고 급하게 소금을 사는 것이 아니라 미리 천일염을 준비해 두고 간수가 빠지도록 보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오래 두었던 소금은 손으로 만져보면 축축하게 달라붙기보다는 보슬보슬한 느낌이 났습니다.
그때는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냥 어른들이 늘 그렇게 김장을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음식을 직접 만들어보고 김장을 지켜보면서 알게 된 것은 김장 맛을 결정하는 일이 양념을 버무리는 날에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좋은 배추를 고르고, 소금을 준비하고, 배추를 알맞게 절이는 것부터 이미 김장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좋은 김장 배추는 들어보고 속을 봤습니다
어릴 때 시장에서 배추를 고르는 모습을 보면 그냥 크고 보기 좋은 배추를 고르지는 않았습니다.
먼저 배추를 들어봤습니다. 같은 크기라면 어느 정도 묵직한 것을 보고, 줄기 쪽을 손으로 눌러 단단한지도 살펴봤습니다.
겉잎은 싱싱하고 짙은 녹색을 띠는지 보고, 속을 벌려보면 안쪽 잎이 노르스름한 배추를 좋게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도 지금 배추를 고른다면 크기만 보기보다 무게감과 줄기의 단단함, 겉잎의 상태, 속잎의 색을 차례대로 살펴봅니다.
한 가지는 예전 생각과 조금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속이 빈틈없이 꽉 찬 배추가 무조건 좋은 배추라고 생각하기 쉬웠습니다. 하지만 김장용 배추는 너무 단단하게 꽉 찬 것만 찾기보다 적당히 결구되어 있고 잎과 줄기의 상태가 좋은지를 함께 보는 것이 좋습니다.
결국 배추는 ‘큰 것’ 하나만 보고 고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들어보고, 눌러보고, 속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장 전에 미리 준비했던 천일염
우리 집 김장을 생각하면 배추 다음으로 기억나는 것이 굵은 천일염입니다.
어머니 세대에서는 김장철이 되기 훨씬 전에 소금을 사두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한 해 전에 준비해 두고 간수가 빠지도록 보관하기도 했습니다.
오래 보관한 천일염을 손으로 만져보면 제가 기억하는 느낌은 ‘보슬보슬하다’였습니다.
다만 이것을 모든 집이 반드시 1년 동안 소금을 보관해야 한다는 뜻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소금의 생산과 유통 방식도 달라졌고 좋은 제품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농촌진흥청에서도 배추와 무를 절이는 굵은소금은 깨끗한 빛이 돌고 결정이 고르며, 천일염은 건조 상태가 좋고 결정체가 고른 것을 선택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농촌진흥청
그래서 지금 제가 김장용 소금을 고른다면 ‘몇 년 묵은 소금인가’만 따지기보다는 깨끗하고 잘 건조되어 있는지, 결정이 고른지부터 살펴볼 것 같습니다.
배추를 절이는 시간
우리 집에서는 소금물에 담갔다가 잎 사이에 소금을 넣었습니다.
배추를 절이던 모습은 지금도 비교적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마당에 큰 통을 놓고 물에 굵은소금을 풀었습니다. 어머니는 소금물을 만들어 간을 보고, 손질한 배추를 그 물에 한 번 푹 담갔다가 바로 건져냈습니다.
그다음이 중요했습니다.
배추 겉에 소금을 마구 뿌리는 것이 아니라 두꺼운 흰 줄기 쪽을 중심으로 잎 사이사이에 굵은소금을 넣었습니다. 얇은 잎 부분보다 두꺼운 줄기가 늦게 절여지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소금을 넣은 배추를 잠시 두었다가 제 기억으로는 약 30분 정도 지나 처음 만들어놓았던 소금물에 다시 담갔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방법이 농촌진흥청에서 소개하는 기본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공식 자료에서도 소금물을 만들어 배추를 먼저 적신 뒤, 두꺼운 줄기 부분에 소금을 추가하고 중간에 뒤집어 골고루 절이도록 안내합니다. 농촌진흥청
어릴 때는 그저 어머니가 하던 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우리 집은 약 6시간, 그런데 시간만 믿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우리 집 배추 절이는 시간은 대략 6시간 정도였습니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시계를 보고 정확히 6시간이 되면 배추를 꺼냈던 것은 아닙니다.
중간중간 배추를 들춰봤습니다.
줄기 부분을 만져보고, 배춧잎을 구부려보고, 어느 정도 숨이 죽었는지 계속 확인했습니다. 아직 뻣뻣하면 조금 더 두고, 너무 물러지기 전에 건져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좋은 상태는 배추가 축 늘어져 힘없이 죽어버린 상태가 아니라, 숨은 죽었지만 씹었을 때 아삭함이 남아 있는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우리 집 경험과 공식 자료에는 시간 차이가 있습니다.
농촌진흥청 자료에서는 15~20% 정도의 소금물을 사용해 8~10시간 절이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고, 다른 농사로 자료에서는 약 15% 소금물에 대략 8시간을 제시합니다. 또한 너무 오래 절이지 말고 중간에 한두 번 뒤집도록 안내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집의 6시간이 틀렸던 걸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배추 크기와 수분 상태, 소금물 농도, 잎 사이에 넣은 소금의 양, 날씨와 온도에 따라 절여지는 속도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6시간’이라고 따라 하는 것보다 배추 상태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 집에서 6시간은 정답이라기보다 그날그날 배추를 살펴보며 얻어진 대략적인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은 결국 손으로 확인했습니다.
알맞게 절여졌다고 판단하면 배추를 건져 깨끗한 물에 씻었습니다.
우리 집에서도 두세 번 정도 헹궜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흙이나 남아 있는 소금을 씻어낸 뒤 물기가 빠지도록 한동안 두었다가 양념을 버무렸습니다.
이 과정 역시 농촌진흥청의 방법과 비슷합니다. 공식 자료에서도 절인 배추를 흐르는 물에 2~3회 부드럽게 헹군 뒤 소쿠리에 올려 물기를 빼는 방법을 안내합니다. 농촌진흥청
지금 생각해보면 옛날 어른들은 온도계나 염도계를 들고 김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배추를 들어보고, 줄기를 눌러보고, 잎을 구부려보고, 맛도 보면서 상태를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배추 절이기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몇 시간’이라는 숫자 하나가 아닙니다.
시간은 기준으로 삼되 마지막 판단은 배추를 직접 만져보고 하는 것.
이게 제가 어릴 때 보았던 우리 집 김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방법입니다.
요즘은 절임배추를 주문하면 이런 힘든 과정을 상당 부분 건너뛸 수 있습니다. 그것도 좋은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직접 배추를 절여 김장을 해본다면 왜 예전 어른들이 중간중간 배추를 들춰보고 손으로 줄기를 만져봤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됩니다.
어머니는 김장 당일에만 김장을 준비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배추를 고르는 것에서 시작해 소금을 미리 마련하고, 김장 전날에는 배추가 제대로 절여지는지 몇 번이고 살펴보셨습니다.
어쩌면 우리 집 김장은 좋은 소금을 준비하던 그때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