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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이야기를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육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릴 적 김장하는 날이면 하루 종일 배추를 씻고 양념을 버무리던 어른들이 일을 마친 뒤 한자리에 둘러앉았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늘 따뜻한 수육과 갓 버무린 김치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맛있어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제가 직접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수육도 여러 방법으로 삶아보게 됐습니다.
그렇게 만들어 먹은 시간이 어느덧 10년 정도 됩니다.
저는 요리 전문가도 아니고 유명한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다만 음식을 좋아해서 직접 만들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번에 하나씩 바꿔보는 편입니다.
그렇게 여러 번 만들어본 끝에 지금은 오히려 처음보다 훨씬 단순한 방법으로 수육을 삶고 있습니다.

삼겹살보다 앞다리 사태를 좋아하는 이유
수육이라고 하면 삼겹살이나 목살을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여러 부위로 만들어봤지만 지금 제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부위는 돼지고기 앞다리 사태입니다.
앞다리 사태는 처음 보면 삼겹살보다 지방이 적어 퍽퍽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적당한 크기로 잘라 너무 센 불로 오래 끓이지 않고 잘 삶아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살코기는 부드러우면서도 적당한 식감이 있고, 껍질과 지방이 붙은 부분은 제가 좋아하는 족발과 비슷한 쫀득한 느낌이 납니다.
무엇보다 삼겹살처럼 기름진 맛이 강하지 않아 김치와 같이 먹었을 때 잘 어울렸습니다.
이건 어떤 부위가 더 좋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기름지고 부드러운 수육을 좋아한다면 삼겹살이 더 입맛에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수육을 몇 점 먹다 보면 지나치게 기름진 것보다 담백하면서 쫀득한 식감이 있는 쪽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여러 번 만들어본 끝에 지금은 앞다리 사태를 가장 자주 사용합니다.
왜 저는 소주와 천일염만 넣을까요
수육을 만들면서 된장도 넣어보고, 커피도 넣어보고, 대파와 여러 향신채도 사용해 봤습니다. 그런데 제가 계속 마음에 걸렸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고기 색이었습니다.
저는 수육을 썰었을 때 고기 본래의 깨끗하고 밝은 색이 보이는 것을 좋아하는데, 된장이나 커피 같은 재료를 넣고 삶으면 국물이 탁해지고 고기 겉면의 색도 제가 원하는 모습과 조금 달라졌습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육 하나 삶는데 정말 이렇게 많은 재료가 필요한 걸까?
그때부터 하나씩 빼보기 시작했습니다.
된장을 빼보고, 커피도 빼보고, 향신채도 줄여봤습니다.
재미있게도 재료를 줄일수록 제가 좋아하는 수육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잡내를 없애기 위해 여러 향을 덧입히기보다는 고기 자체의 맛과 색을 살리는 쪽을 좋아합니다.
하나씩 재료를 빼다 보니 지금은 소주와 천일염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소주는 제가 여러 번 만들어보면서 돼지고기 특유의 향을 조금 더 깔끔하게 느끼게 해 준 재료였습니다. 실제로 알코올은 가열 과정에서 농도가 감소하지만, 끓인다고 곧바로 모두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천일염은 바닷물을 햇빛과 바람으로 증발시켜 만든 소금입니다. 저는 수육을 삶을 때 천일염 2숟가락을 넣는데, 이것 역시 ‘천일염을 넣으면 무조건 수육이 부드러워진다’는 의미보다는 여러 종류의 소금과 방법을 사용해 본 뒤 지금 제 입맛에 가장 잘 맞아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결국 제가 10년 가까이 수육을 만들어보며 찾은 방법은 특별한 비법 재료를 계속 더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씩 빼보니 소주와 천일염만 남았습니다.
이것이 지금 제가 수육을 삶는 가장 단순한 방법입니다.

제가 지금 만드는 앞다리 수육 삶는 법
제가 만드는 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보통 앞다리 사태 600~800g 정도를 준비합니다.
큰 덩어리를 그대로 삶기보다는 약 200g 정도씩 나눠서 준비합니다. 너무 큰 덩어리로 삶으면 익는 시간이 길어지고 안쪽과 바깥쪽의 익는 정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냄비에는 고기가 충분히 잠길 정도로 물을 넣습니다.
제가 넣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소주 2잔과 천일염 2숟가락.
그리고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처음부터 찬물에 고기를 넣지 않고 물이 충분히 끓은 다음 고기를 넣습니다.
고기를 넣으면 물 온도가 떨어집니다. 다시 끓기 시작하면 불을 낮춰 너무 세게 팔팔 끓이지 않고 은근하게 삶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200g 안팎 크기에서는 보통 약 40분 정도 삶습니다.
그리고 바로 꺼내지 않습니다.
불을 끈 뒤 뚜껑을 닫아놓고 약 10분 정도 그대로 둡니다.
제가 여러 번 만들어보면서 지금 가장 만족하고 있는 방법입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는 꼭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40분이라는 시간이 모든 수육에 똑같이 적용되는 정답은 아닙니다.
고기의 두께와 크기, 냄비 크기, 물의 양, 화력에 따라 익는 시간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처음 만들어보는 분이라면 시간만 믿기보다 가장 두꺼운 부분까지 충분히 익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0년 만들어보니 오히려 단순해졌습니다.
최근에는 이렇게 만든 수육을 가족뿐 아니라 직원들과 함께 먹은 적도 있습니다.
고맙게도 직원들이 유명한 수육집보다 맛있다고 이야기해줬습니다.
정말 유명한 식당보다 맛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 말을 들으니 지난 10년 동안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제 입맛에 맞는 방법을 찾아온 시간이 괜히 쌓인 것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요리를 하면서 한 가지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을 더 넣을까 고민하지만, 오래 만들다 보면 오히려 무엇을 빼야 할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제 수육도 그랬습니다.
지금 남은 것은 좋은 고기와 물, 소주 조금, 천일염 조금, 그리고 서두르지 않고 삶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수육 이야기를 쓰다 보니 다시 어릴 적 김장날이 생각납니다.
하루 종일 김장을 마치고 사람들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갓 담근 김치를 손으로 쭉 찢어 따뜻한 수육 한 점에 올려 먹던 모습입니다.
그날은 하루 종일 힘들게 일했는데도 마지막에는 꼭 작은 잔치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때는 그저 수육이 맛있어서 먹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한 점에는 음식 맛만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함께 김장했던 사람들, 추운 날씨, 마당에서 올라오던 김, 그리고 한 해 먹을 김치를 다 만들었다는 홀가분함까지 함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김장철에도 앞다리 사태를 삶아볼 생각입니다.
이번에는 김이 올라오는 수육 한 접시와 갓 담근 김치도 직접 사진으로 남겨보려고 합니다.
어릴 때는 어른들이 만들어준 수육을 기다려 먹었는데, 이제는 제가 여러 번 만들어보면서 제 방식이라고 할 만한 것도 하나 생겼습니다.
음식은 레시피만 남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만들면서 찾아낸 자기만의 방법과 그 음식을 함께 먹었던 시간까지 남는 것 같습니다.
